연구가 힘들다면

저자

김재연

공개

2025년 12월 2일

2025년 한 해 동안 학회, 학과 세미나 등에서 한국인, 한국계 대학원생과 포닥 여러분을 정말 많이 만났 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생긴 기회들이었지만, 학부에서 개론 강의를 하면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되듯 저보다 이른 커리어 단계에 계신 분들을 만나면 제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 않기에 때로는 꿈과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결국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1)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본인이 보람을 느끼는, 좋은 연구를 하시라는 것, 그리고 (2) 그런 연구는 힘들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 연구의 성과는 빨리 나오지 않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성과가 빨리 나오기를 바라지만, 큰 나무는 원래 천천히 자랍니다. 빨리 자라는 것은 콩나물 정도입니다. 박사 과정은 큰 나무의 묘목을 기르는 과정이지 콩나물을 키우는 과정이 아닙니다. 따라서 결실이 쉽게, 빨리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연구 방향을 잘못 잡거나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아 성과가 늦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2. 학문이 특별히 더 어렵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학부를 마치고 바로 대학원으로 오신 분들이 자주 하는 오해 중 하나는 학계가 다른 분야보다 유독 어렵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든 잘하려면 어렵습니다. 전문가가 되는 길은 어떤 분야에서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3. 좋은 연구도 습관이고, 좋지 않은 연구도 습관입니다

좋은 연구 습관은 몸에 배기 어렵고 쉽게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좋지 않은 연구 습관은 익히기 쉬우면서도 오래 지속되기 쉬워 더 위험합니다.

4. 학계가 맞지 않는다면, 일찍 방향을 바꾸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박사 과정은 지적 호기심이 부족하거나 연구할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분이 오면 본인도 힘들고 지도교수도 힘듭니다. 연구를 하고 싶어서 교수가 되거나 연구자가 되려는 것은 좋지만 그 반대가 되면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불행입니다.

5. 정말 풀고 싶은 문제, 답하고 싶은 질문이 있으신가요?

이 조건이 모든 것에 앞섭니다. 정말 궁금한 질문이 있고 그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라면, 그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습니다. 정책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분들에게 최선의 이론과 증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가정과 취미가 있지만 동시에 전문가로서의 열정과 책임감도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합니다.

박사 과정은 이론, 방법, 사례를 배우고 체화한 뒤 이를 토대로 새로운 도전적 연구를 해내는 법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지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니 쉬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 성장하고 싶다면 박사 이후에도 이 과정을 반복하고 스스로를 그런 환경에 두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 힘든 일을, 굳이, 왜 하고 싶으신가요?

연구가 힘들다면 기억했으면 하는 것들
  • 학계의 대가도, 라이징 스타도 모두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연구는 힘든 것이 정상입니다.
  • 힘든 연구가 반드시 좋은 연구는 아니지만 좋은 연구는 대체로 어렵습니다.
  • 스스로 고생해야 비로소 좋은 연구가 나오고, 좋은 연구는 좋은 문제 해결의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 좋은 연구는 개인적 만족을 넘어 사회적 의미가 있습니다.
  • 숙련과 발전의 과정, 전문성의 습득은 어느 분야든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학계를 떠나셔도 똑같이 마주할 장벽, 혹은 기회입니다.
  • 좋은 연구를 손쉽게 만드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연구라는 활동을 더 의미 있고 값지게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 그 의미와 가치는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